도시 공간 재생

한국 도시 재생 사업의 흐름과 한계

kkonguu 2025. 11. 5. 08:29

1. 개발에서 재생으로, 도시의 패러다임이 바뀌다

한국의 도시는 오랫동안 개발 중심으로 성장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도시 정책의 핵심이었고, 낡은 건물은 철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빠른 개발은 도시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오래된 동네는 사라졌고, 지역 공동체는 흩어졌다. 이런 부작용 속에서 한국 사회는 “새로 짓는 도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도시를 다시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도시 재생이다.

도시 재생은 단순히 외형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공간과 사람, 역사와 문화를 연결해 도시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국은 2013년 이후 정부 차원에서 도시 재생 정책을 본격 추진했으며, 2017년에는 ‘도시 재생 뉴딜’이 국가 주요 사업으로 지정되었다. 이 흐름은 도시를 ‘건축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사회적 시도의 출발점이었다.

 

2.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의 등장 배경

정부가 도시 재생 뉴딜을 추진한 이유는 명확하다. 전국적으로 노후 주거지가 급증하고, 인구는 대도시로 쏠리며 지방 중소도시는 빠르게 쇠퇴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방 인구는 매년 감소세를 보였고,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재개발은 더 이상 해법이 되지 못했다. 철거와 신축은 지역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세입자를 내몰았다. 정부는 ‘철거 없는 도시 재생’이라는 방향을 제시하며, 기존 도시의 구조를 유지한 채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회복하려 했다.

뉴딜 정책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소규모 재생 모델을 강조했다. 즉, 행정 주도의 대규모 정비사업에서 주민 참여형 생활재생으로의 전환이었다.

 

3. 한국형 도시 재생의 주요 추진 전략

한국의 도시 재생 사업은 크게 다섯 가지 전략으로 나뉜다.

첫째, 생활 기반 개선형 재생이다. 오래된 주거지의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골목길·안전·환경을 개선한다.
둘째, 상권 활성화형 재생이다. 낙후된 전통시장이나 구도심 상권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 문화 기반 재생이다. 폐공장이나 빈집을 리모델링해 예술 공간이나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한다.
넷째, 산업 혁신형 재생이다. 산업단지를 창업·벤처 중심지로 바꿔 일자리를 창출한다.
다섯째, 스마트 기술 융합형 재생이다. 도시 데이터를 활용해 교통, 에너지, 환경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이 다섯 가지 축이 지역의 여건에 맞게 조합되어 한국형 도시 재생의 골격을 이룬다.

 

4. 대표적인 도시 재생 사례

한국의 도시 재생은 여러 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진행되었다. 서울의 성수동은 낡은 공장 지대를 창작 공간과 카페 거리로 바꾸며 로컬 브랜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과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들이 비어갔지만, 서울시가 건물 철거 대신 ‘리모델링 중심의 재생 전략’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젊은 창업가와 디자이너가 모여들며, 과거 산업 구조 위에 새로운 창조 산업이 자리를 잡았다. 성수동의 사례는 도시 재생이 단순한 미화 사업이 아니라, 산업 전환과 창의적 경제 재편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부산의 영도는 조선소와 항만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산업 구조 변화로 한때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영도는 해양 문화와 예술을 결합한 도시 재생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대표적인 사례로, 낡은 주거지를 보존하면서 예술가의 작업실과 전시공간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주민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관광객이 늘면서 지역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았다. 부산시는 이 지역의 성공을 계기로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확대해 도심 외곽의 노후 주거지까지 재생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한국 전통 건축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관광 산업과 결합해 성공한 대표적 모델이다. 전주는 개발 대신 보존을 택했고, 그 결과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전통문화 체험, 한식 기반 로컬푸드 산업, 공예품 판매 등이 어우러지면서 지역 경제의 자립 기반이 강화되었다. 특히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체험 공방, 전통주점 등은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으로 발전했다.

대구의 서문시장 일대는 오랜 역사와 상권을 유지해온 전통시장이지만, 재난 이후 침체된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문화형 재생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시장 상인들이 직접 참여해 상권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야시장과 라이브 공연 등 문화 이벤트를 도입하면서 젊은 세대 유입이 늘어났다. 도시 재생이 단순한 공간정비 사업이 아니라 지역 상권과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전북 군산의 근대거리는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들을 보존하며 과거의 흔적을 관광 자원으로 전환한 지역이다. 군산시는 단순 복원에 그치지 않고,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활용하며 지역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의 아픔을 상업화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기억 기반 재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은 주민 주도로 진행된 자발적 재생의 대표적 사례다. 철거 예정이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벽화 작업을 시작했고, 이 작은 움직임이 도시 재생으로 이어졌다. 정부나 지자체 주도가 아닌 시민 참여형 구조였다는 점에서 다른 사례와 구분된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상권이 활성화되고, 수익이 다시 마을 공동체에 환원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철거 대신 전환”**이었다. 기존의 공간을 없애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주민이 단순히 사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과거 개발사업과 명확히 구분된다. 물리적 공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도시 재생의 지속성은 정부 정책보다 주민 참여, 지역 문화, 그리고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다.

5. 주민 참여의 현실과 한계

도시 재생이 표면적으로는 주민 참여를 강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행정 주도가 강하다. 많은 사업이 초기 계획 단계에서 전문가와 공무원 중심으로 설계된다. 주민은 회의에 참여하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은 제한적이다.

또한 주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상가주와 세입자, 원주민과 외부 창업자 사이의 갈등이 발생한다. 재생의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도시 재생이 원래 지향했던 공동체 회복의 목적이 퇴색되는 순간이다.

따라서 정부는 주민 참여를 단순한 형식이 아닌 ‘운영 권한의 공유’로 전환해야 한다. 재생의 주체가 행정이 아니라 시민이 되어야 한다.

 

6. 재정 의존 구조의 문제점

한국의 도시 재생 사업은 대부분 정부 예산에 의존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이 사업의 주요 재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업이 단기성과 중심으로 흐르기 쉽다. 예산이 끊기면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공간은 유지비 부족으로 방치된다.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을 위해서는 지역 내부에서 자생적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로컬 브랜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이 지역의 순환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갖춰야 한다.

 

7. 한국 도시 재생의 새로운 방향

앞으로의 도시 재생은 ‘관계 기반 재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시의 진짜 변화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결에서 시작된다. 주민, 창업가, 예술가, 행정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도시의 생명력이 생긴다.

또한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지역의 인구, 상권, 이동 데이터 등을 분석하면 어떤 형태의 재생이 가장 효과적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은 수단이고, 도시의 목적은 여전히 사람이다.

 

한국 도시 재생 사업의 흐름과 한계

 

8. 한국형 도시 재생의 진짜 과제

한국의 도시 재생은 과거의 개발 중심 정책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아직은 과정의 초입에 있다. 도시의 공간은 변하고 있지만, 사람의 관계와 경제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형태의 재생’이 아니라 ‘내용의 재생’이다. 정부 주도에서 시민 주도로, 단기 성과에서 장기 지속으로, 예산 의존에서 자생적 순환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도시 재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시를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도시가 진정으로 재생되려면, 공간보다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 건물이 아니라 관계가 도시를 만든다.